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토리오급 전함 (문단 편집) == 개발 ==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주력함 건조에 사용할 수 있는 7만톤의 배수량 쿼터를 받아냈다. 이는 군축조약상 가장 적은 숫자의 배수량 비율만 인정받은 양국에 대한 보상이었다.[* 조약 참여 국가는 당시 해군력 5대 강국인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였으며, 이 중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영미일보다 해군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1928년에 15인치 2연장 주포탑 3기로 무장하고 시속 28~29노트로 기동하며 배수량 23,000t을 가지는 전함을 설계했다. 이 전함은 배수량 쿼터 한도 아래에서 3척을 건조할 수 있으므로 이탈리아의 계산으로는 항시 2척은 전투가능상태로 유지가능했다. 이 전함은 중무장과 속도 위주로 만들어졌으므로 방어력 및 항속거리는 희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말이 전함이지 [[순양전함]]의 성격을 가지며 그나마 항속거리도 순양(巡洋)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어정쩡한 함선이었다. 이런 배를 설계한 이유는 해당 군함은 이탈리아와 주변 바다를 지키기 위해 지중해 안에서만 활동할 예정이므로 속도는 빨라야 하지만 항속거리는 짧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리토리오급 전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와는 별도로 역시 같은 시기인 1928년에 이탈리아는 다른 전함의 설계안을 만들었다. 해당 설계안은 6문의 16인치 주포로 무장하고 [[대응방어]]를 달성하며 속도는 시속 29~30노트, 배수량이 35,000t인 전함이었다. 당시의 군축조약상 주포 덕분에 건조가 불가능한 전함을 설계한 이유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만료된 후 새로운 군축 조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의 대비용이며, 실제 적용할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23,000t의 전함 중 마지막으로 건조되는 전함 대신 이 전함을 건조할 예정이었다. 이 시기까지는 이탈리아는 돈 문제 등으로 인해 스스로 군축을 하고 있던 형편상[* 엄연히 드레드노트형인 [[단테 알리기에리 전함]]을 돈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알아서 해체할 정도였다.] 자기가 앞서서 해군 군비경쟁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23,000t 설계안이나 35,000t 설계안이나 준비만 해놓고 실제로 실행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보조함의 제한규정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미 촉발된 보조함 경쟁이 양국간에 더욱 강력하게 진행되었으며, 독일이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을 건조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방책으로 프랑스가 [[됭케르크급 전함]]을 만들어내자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되었다. 이에 따라 1932년에는 13.5인치 3연장 주포탑 2기를 장비한 18,000t의 주력함 설계안을 만들어내지만, 적은 배수량으로 만드는 함선은 됭케르크급 전함을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는 즉시 사장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3년 말 ~ 1934년 초반에 논의되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자간 해군력 협상이 무산되었는데, 사전 협의에서 합의된 내용은 26,500톤 이하의 배수량을 가진 이탈리아의 신형 전함 1척을 만들고 끝내자는 것이었다.(됭케르크와 이탈리아 신형 전함 한 척 씩 1:1 비율) 그런데 정작 나중에 프랑스 측의 특사가 가지고 온 조약 내용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한 척씩 전함을 건조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어져 있었다.(됭케르크 + 됭케르크급 2번함 - 이후 스트라스부르/이탈리아 신형 전함 한척으로 2:1) 당연하지만 이런 조항은 이탈리아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1934년 1월 최종적으로 결렬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탈리아의 설계안은 중후장대(重厚長大)하게 변한다. 15인치 2연장 주포탑 4기를 탑재하는 26,900t 설계안이 나왔으나 역시 화력과 방어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16인치 주포로 무장한 35,000t 설계안에 밀려버렸다. 그러나 16인치 주포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전혀 만들어본 적이 없는 함포라서 설계 및 제작, 생산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으므로 화력에서 약간의 타협을 해서 최종적으로는 15인치 3연장 주포탑 3기를 장착한 41,000t의 배수량을 가진 전함 설계안이 만들어진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는 '최대' 16인치이며, 에스컬레이터 조항 비적용시 전함의 최대 주포 구경을 14인치로 규정한 제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경우 이탈리아는 서명하지 않았다.] 이 설계안을 다듬은 것이 바로 리토리오급 전함이며, 배수량에서 군축조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15인치 주포를 장착한 35,000t의 배수량을 가진 전함이라고 공표한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리토리오급 전함은 1934년 10월 28일에 2척을 건조를 시작했다.[* 두 척의 건조 개시 일자가 동일한 것은 어느 정도 정치적 과시의 목적이 있었다. [[로마 진군]]을 통해 무솔리니가 권력을 얻게 된 날이기 때문.] || [youtube(LXG46uINC9o)] || || 1930년대, 제노바 조선소에서 건조 시작되는 1번함 리토리오의 모습. || || [youtube(eE_W8j1Za5Y)] || || 1937년, 진수되는 1번함 리토리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